2011년 9월 25일 일요일

팔괘장 八卦掌 정기운동 11년09월25일



금은 더운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늦게 산에 올라 보니 반가운 새로운 얼굴 두분 계셨고,
다들 몸을 풀고 있었다.

일찍 일찍 다녀야 겠다.

두분은 처음 나오면 누구나 하고 팔괘장 운동을 쉴때까지 하게 되는 
야테, 티테, 보, 뚜장 연공을 시작하였다.

산이 비록 높으나 천천히 꾸준히 정상까지 가치 올라 갔으면 좋겠다.

티테를 연공하였다,
선생님께선 새로운 분들을 봐주시고
권선배님의 구령으로 단수를 연공하였다.

각자의 팔세전장을 연습하였으며, 노선배님의 눈으로 오늘은 배후삽장의 연자초수와,
오룡출수중 신법의 미숙했던 부분을 세밀하게 새롭게 하였으며,
사자장구의 구보, 파보에 일치하는 신법에 대해 명확하게 하였다.
권선배님의 시범을 눈으로 기억하였다.

연습하던 전장을 다시 새롭게 고치고 연습했으며, 새로운 부분을 익숙해 지도록 해야 겠다.

선생님께선 연청도의 신법이 답답스런 부분을 지적하셨고,
형의 진행 방향, 등산식의 명확함, 신법의 진과 퇴에 대해 설명과 시범을 보여주셨다.

형의문의 붕, 포, 찬을 연공하였고,
노선배님은 포권의 신법을 보여주시며, 눈을 넓혀 주셧다.
선생님의 구령으로 퇴법을 연습하였고,
퇴법은 조금씩 가고 있는듯 하다. 달려 가고 싶지만, 마음만 그러하다.
뚜, 촨, 삽, 탐장을 던지며, 마무리 운동을 하고 산을 내려왔다.

오늘은 노선배님과, 권선배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며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생각과 귀와 눈을 넓게해 주셨다.

2011년 9월 21일 수요일

팔괘장 八卦掌, 나의 吾師 金相昊





吾師 金相昊

나의 스승 김상호 선생께서는 인천 숭의동이 고향이시다.
내가 태어난 집하고는 찻 길 하나 건너서 마주하고 살았었으니

아마도 사제간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는가 보다.

사부께서는 어려서 부터 중국무술을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중학생의 어린나이인 관계로 중국무술을 가르치는 도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단지 중국인들이 모여사는 화교촌에 가면 무술을 배울수 있는 계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부두노동조합에 사환으로 취업하여 낯에는 조합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니셨다.

그 곳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인들과 친분이 맺어졌고 친구도 사귀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노수전 사부라는 대단한 중국 노인네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노 할아버지의 딸(현재 미국에 생존)과 친분이 있고
노 할아버지 외손자의 시영 아버지 였던 김영철(피아노, 바이올린선생)씨에게
노 할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울 수 있게끔 해달라고 소개를 부탁하여
김영철씨 주선으로 노 할아버지와 딸, 노수덕선생, 김영철씨 까지 모여
제자로 받아들일 것 인가에 대한 가족 회의를 하였다고 한다 .


노수덕 선생이 약간의 반대를 하였지만 노 할아버지도 제자로 받겠다 하시고
노수덕선생의 누님도 찬성하여 노 할아버지의 제자가 되어 팔괘를 전수받게 되시었다.
해서 노 할아버지에게 평생 사제간의 도리를 다 할 것을 약속드리고
노 할아버지의 마지막 제자로 정식 입문하여 무술을 전수 받게 된다.

(위 사진의 위치가 부두 노동조합 옥상이며 노수전사부께 수련을 시작한 곳으로 수련 중
쉬는시간에 마침 카메라가 있어 노수전 사부와 기념사진 한장 남긴것이다)

그 때가 1967년도 이고 선생께서 중학교 2학년 15살 때이다.

노 할아버지에게 무술수업을 받던 중 어느 날
선생께서 노 할아버지의 아들인 노수덕 선생의 집에 다니러 갔을 때 역시 그 곳에 다니러 온
한국인으로서는 제일 큰 제자인 전대성 선생을 처음 보게 되었고
자연이 합석하게되어 노수덕선생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었으며

그 당시 전대성 선생은 도장을 운영하기 전 이었고 그 후 신흥동 돌담 모퉁이에
도장을 개관하게 된다.

여하간 선생께서는 발군의 기량과 타고난 무술적 재능으로 노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무술을 배우셨고 그런 노 할아버지는 어린 제자를 귀여워 한 나머지
제자의 발 길이를 손 뼘으로 재서 꼭 맞는 중국 신을 구해 신겨 주셨으며
노 할아버지의 며느리 즉 노수덕선생의 부인이 중국 옷을 만드는 재주가 있어 며느리에게 부탁하여 

중국옷을 지어다 입혀 주셨다.

(아래 사진의 옷과 신발이 노 할아버지께서 지어다 입혀주신 옷인데 그 때가 1969년도 이다)




- 위 사진이 그 옷이고 장소는 아래에 언급되는 소사(현 부천 ) 의 모 도장이다.-


선생께서도 노 할아버지께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은 넉넉지가 않았기 때문에
중국 음식점에 배달부로 일거리를 얻어 월급을 모아서 노 할아버지께 금반지를 해 드리기도 하셨다.
방학 때는 노 할아버지 방에서 거의 매일 같이 잠을 자며 운동을 하셨고


노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의 정 이상으로 어린 제자를 이뻐 해 주셨다고 한다.
또한 화교촌에는 화교학교 무술선생이셨던 피 할아버지(필서익 노사)가 계셨는데
선생께서는 노 할아버지의 수를 익힘과 동시에 피 할아버지의 수도 익혔으면 하셨는데

피 할아버지는 노 할아버지와 달리 한국인에게는 우호적이지를 않아
생전에 중국인 외에는 한국인 제자를 일절 두지 않았다.
해서 피 할아버지의 중국인 제자(왕 입국)를 친구로 사귀어
피 할아버지의 수를 친구를 통해 습득하게 된다.

그 때 익힌 피 할아버지의 수가
뚱푸, 얼절로, 판룽군, 빠기, 매화창, 싼환도, 칠절편, 매화도, 양가 태극권... 등이다

그 수들을 노 할아버지 앞에서 자랑삼아 뛰면 노 할아버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역정을 내셨다고 한다.

그 때 쯤 전대성 선생이 신흥동에 도장을 개관하게 되어 운동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선생께서는 노 할아버지에게 배우면서 선배이기도 한 전대성 선생의 도장에 새벽에 나가서 
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어린 학생들 열 댓명이 모여 용돈을 모아 노 할아버지께 드리고
노 할아버지의 사위가 운영하였던 중국 음식점인 대려춘 옥상에서
운동을 배우던 일이 있었는데 약 6개월 정도 지속되다가

노수덕 선생이 노 할아버지에게 학생들을 지도를 못하게 하는 바람에
그 학생들은 노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나의 선생에게로 와서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으며
후일에 나에게는 선배가 되는 인연이 되게 된다.

그 때가 1970년도로서 그 선배들이 중학교 3학년 16살들 이었으며 그 중의 중심인물로는
채장석 선배, 박성진 선배, 서춘원 선배 등이 있다.

선생께서는 노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사시던 집 뒤편의 공터 겸 창고에서 
중국무술 용화문이란 간판을 내걸고 그 선배들과 같이 가르치며 수련을 하셨다.

이 때가 1971년도로서 그 자리에서 약 3년정도 도장을 운영하시게 된다.
그 와중에 김OO라는 사람이 소사(지금의 부천)에 도장을 개관하자
노수덕 선생이 실력을 문제 삼아 간판 내리라고 노발대발 하였는데

나의 선생께서 소사도장에 관장으로 취임하는 조건으로
도장 문 닫게 된 것을 모면하게 해 주신 일도 있었으며

그런 연유로 노 할아버지를 자주 모시고 소사도장에 가셨다고 한다.


이 후 공군에 입대하였는데
일등병때 부대 내에 있던 태권도 도장을 간판을 내리게 하고 그 자리에 중국무술 
도장을 열어 군간부들과 그 자녀들을 가르쳐 당시 전우신문에 대서특필 된 바 있다.




일개 공군 사병이 기존의 태권도 도장을 밀어내고 십팔기 교관이 되어 전우신문에 보도가 될 
정도인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대단한 경력이다.

이 때 공군 부대장의 추천서를 갖고 삼장법사 일붕 서경보 큰 스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서경보 큰 스님을 뵈었을 때 " 체구도 작고하니 뭔 무술을 하겠나 " 하는 눈치 였을 때

선생께선 절간 마당에서 옷을 벗어 제치고 한바탕 시범을 하였더니

서경보 스님께서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 " 이게 도데체 무슨 무술인고" 하고 크게 반겨했다는
일화는 선생께서도 나에게 자랑삼아 가끔씩 해주던 말씀이시다.


군 입대 이전에 선생께서는 노 할아버지께 전수받은 팔괘장과 자연스럽게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신만의 무술과 서경보 큰 스님을 통해 익힌 禪을 통해
스스로의 무술을 창안하기 위한 밑그림이 그려지던 시기 였는데

이미 노 할아버지와 대사형 이었던 노수덕 선생에게는
한국인으로서 새로운 무술의 길 을 가겠으니 허락해 달라하여
노 할아버지와 노수덕선생의 이해와 인정을 받았는데

이 때가 1973년도 21살의 나이셨으니
어찌되었거나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 아닐 수 없다.

제대 후에는 김포에 도장을 차려 2년 운영하시다가
1979년 제물포에 도장을 설립하시고 스스로 창안하신 圓身무술과
팔괘장을 5년간 지도하셨다.
이 후에는 내가 선생의 뒤를 이어 후진을 양성해왔고
선생께서는 개인적 수련과 사업에 전념하시어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이루셨고
92년도에는 인천 남동구 구의원으로 당선되시어 의정활동도 하신바 있으시다.
최근에는 인천광역시 우슈협회 회장에 취임하시어
인천 우슈 발전을 위해 앞장을 서시게 되었는데



<2010.10.24. 좌로부터 김상호 사부님, 강영재 선생, 유순화선생 ,상신전선생>


내 입장에서는,
간간히 우슈협회의 동정을 들었던 터라

이전투구장 같은 우슈협회 일에 나서시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주변 팔괘장 후배들의 간곡한 권유로 인해 인천우슈협회의 큰 업무를 맡아 쥐셨으니

나의 생각에도 인천 쿵후계의 최고 원로로서
후배들이나 인천 쿵후계의 발전을 위해 한번쯤은 나서시는 것도
보람찬 일인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이런 글이나 우리 집안의 내력 따위에 관심없는 사람은 이 글을 안 읽어 주었으면 한다
그런 사람을 위해 장시간을 할애하여 쓴 글이 아니고
이 글을 보면 " 아 뭔 말을 하려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소수를 위해 쓴 글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거에 들었던 기억을 되짚고
감히 선생의 과거를 들추어 "나의 스승 김상호"란 제목으로 글을 쓰게된 연유는

진실은 항상 세월속에 묻히는 것이 세상사이므로
인천의 대 선배란 사람들이 진실을 진실로 말해주지 않았던 까닭에
그 후인들은 그 왜곡된 사실을 진실인 양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 할아버지와 나의 선생간의 사실적 관계를 년도별로 정확히 표시한 이유다

사실 노 할아버지의 제자 중 중국인을 제외한 한국인 제자들은
노 할아버지와의 사제간의 사실관계에 있어 명료하게 마음 편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또 내가 이런 부분까지 논 하려한다면 책 한권은 엮어야 할 판 이므로 줄이고 줄여서 쓴 글이다.
하지만 어차피 40년도 한참 지난 과거에 연연할 이유는 없고
단지 선생과 노 할아버지와의 진실된 사실을 간단하게라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선생의 문하에 들어 중국무술을 익히면서 그 때, 그 때 보아온
선생의 무술적 기예는 감탄과 감동 그 자체였다.
흉내 내기 조차 어려운 그 무술적 감동은
내가 한참을 열심히 했던 어릴적에도 쫒아 갈 수가 없었다.

지금도 절반이라도 따라할려는지는 장담할 수 조차 없다

나는 그러한 비범한 무술의 경지가 노 할아버지로 부터 이어져 온다는 그런 가슴 뿌듯함에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살아왔으며 그 기백으로 한국 팔괘장 보존회를 이끌고 있다.

나를 이정도 나마 중국무술에 이르게 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 드린다



盧派 八卦 傳人 張毅林 書



<원문>

한국 팔괘장 보존회 

운동 문의

王斗 王钟庆 왕두 왕종경


선생님께선
보존회와도 인연이 깊은 왕종경(왕두) 조사님의 발자취를 찾으셨다.
한국처럼 인터넷이 보급된다면, 더 많은 자취를 찾을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王斗 王钟庆(2)

王斗 王钟庆(3)

팔괘장 주장술 八卦掌 走掌術




<팔괘 주장술 八卦 走掌術 연습>
팔괘장의 수련요소중 팔괘장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주장술은 팔괘장의 수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며또한 팔괘장의 극의에 이르기 위한 수련방식의 하나로 누누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이것은 팔괘장만의 독특한수련및 연공 방법이다.

팔괘장은 수적인 구성이 원에서 원으로 구성되어 돌면서 돌고 돌면서 또 돌고 끊임없이 돌며 기법을행하기 때문에 초심자 시절부터 주장술에 치중해서 많은 시간과 세월을 투자해야 원을 도는 감각이 터득되어 정해진 팔괘의 방위 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확하게 돌면서 팔괘의 수를 쓸 수가 있게 된다.

이것은 팔괘장이 원운동을 주체로 삼는다 해서 단순히 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숙달여부에 따라 상반, 중반,하반으로 나뉘어 하지를 단련하며 또한 내공수련으로서 호흡을 병행하여연무중에도 끊임이 없이 실행하여 내적인 공을 차곡 차곡 쌓아 내가무예로서의 극의에 이르기 위함이며이것은 불가의 좌선이나 선가의 양생호흡에 전혀 다름 아니며 타문 에서 주로 단련하는 참춘과도 다르지않고 호흡을 통해 내적이고 정신적인 수련을 추구한다는 것은 모두 같다 할것이다.

단지 팔괘장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 오로지 돌며 수행하여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폭발력을 양성할뿐이며 참춘은 필요에 의하거나 개인의 취향에 의해 선택적으로 수행될것이다. 주장술의 연습은 까다로운동작의 연속이 아니라 시작하기는 쉽다. 
우선 평평한 곳을 골라 여섯자 정도되는 원을 그리고 사진과 같은자세를 취하고 돈다. 보는 땅바닥이 진흙탕이라 생각하고 진흙이 튀지 않게 일보, 일보 발바닥 전체면이닿도록 조심스레 원주위로 딛는다.호흡은 숙달전에는 자연호흡을 하며 숙달정도에 따라 소복(단전)에 의식을모으고 깊은 호흡을 한다. 장심은 원심을 향하고 허리도 원심으로 틀어 상체가 원심을 향해 자연스럽게 향할수있게 한다.

앞으로 뻗는 손은 눈 높이가 적당하며 장의 형태는 팔괘 천장으로 일지는 평, 이지는 입, 삼지는 만, 사지,오지는 점점 더 만곡시킨다. 뒷손은 역시 천장의 형태인 음장으로서 앞 팔꿈치에 근접시켜 놓는다.
장심은 움푹 파여 손가락과 함께 작은 원의 형상이며 팔도 뻗는 것이 아니고 여유를 주어 원을 형성하며 뒷손,뒷팔, 가슴, 등, 다리, 내측각도, 외측 각도등 어느 곳 어느 부위나 원의 형상을 이루어 우선 나 자신부터 원이되어 원주위나 원 속에서 시선은 호구를 곧게 세운 제 이지 끝을 주시하며 도는데 초보자는 하루 삼십분 정도가적당할 것이다.

이상이 한국의 인천에 노수전할아버지가 전해준 주장술 요령이며 나의 사부이신 김상호 선생께서도 주장술의중요성을 많이 강조 하셨다.그러나 글로 된 설명만으로는 감을 잡기가 쉽지 않으리라 보며 많은 연습과 노력이있어야 한다고 본다.

張毅林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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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글을 바탕으로 주장술을 다시 새롭게 해본다.
사진은 조사님의 대적세 장면이며, 주장술의 기본자세를 엿볼수 있다, 기본자세에서 골반을 최대한 돌려 원호를 따라 구보와 파보를 만든다.
가르침을 상기해 본다면,팔괘장에서의 마보, 궁보, 구보, 파보, 모두 안으로 쪼으며 굳건한 하체를 요구한다.팔괘장은 벌어지고 덜렁 거리면 안될것이다.전신의 혈이 순행하여 손끝까지 따뜻한 기운이 올라온다면 호흡에 맞춰 장을 던진다.

한국 팔괘장 보존회

운동 문의

팔괘장 八卦掌 기본 장술, 뚜장, 뚜장 !!!!




노수전 팔괘에 있어서 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초보부터 수련하여 오랜기간 연마했다 하더라도 제쳐놓지 못하고
밥먹듯 꾸준히 비틀고 던져야 하는 것이 뚜장이다.

다른파에도 뚜장과 같은 장술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름이 뚜장이 아니고 다른 이름일 것이고

특징적으로 우리 팔괘에서 전통적으로 뚜장을 중시하여 온 것이다
나도 선생께 입문해서 첫 날 배운 첫 수가 뚜장이었다

우리 보존회에서도 처음 온 수련자에게는 뚜장과 보법 그리고 야테이(壓腿), 
티테이(척腿)부터 가르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장 첫 날부터 배우게 되는 셈인데
아마 다른 유파에서도 지극히 기초이면서도 상승적 공부에 관통하는 수는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 부터 교습이 되리라고 본다

만일 그렇지 않은 유파가 있다면 중국무술이 아닌 다른 무술체계이거나 
교습체계에 문제가 있는 유파일것이다.

그러므로 비전이니 어쩌니 하는 상승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 자리는
바로 기본기의 다름 아닌 것이라는 소리다 

각설하고 인천에 팔괘장이 전해진것이 세월이 제법 지나다 보니
거쳐간 인물들도 상당할 것인데
맛배기도 보기전에 포기한 인물들이야 일러 무엇하겠냐만은
상당한 세월 몸 담은 사람들도 뚜장하나 제대로 던지는 사람을 여지껏 
내 눈뜨고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러하니 간단한 이 뚜장 역시 제대로 하긴 어렵다는 증명이고 그 함축된 지경을 
알 수 없으니 내일도 알 수 없고 내일도 모를 판인데 모레인들 알아지겠는가 말이다.

주야장천 던지고 닦아도 될듯 하기 어려운데
대부분 이 부류들이 다 대충 던지다 말고 거쳐 지나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니
그 뚜장이 온전히 보존되고 전달될 리 만무한 것 아니겠나.

인천의 뚜장이 제대로 알려지거나 왜곡되어 알려졌던 간에 
이제는 제법 알려져 중국무술 계통이라면 아마도 모르는 사람은 드물거나 
한 두번 쯤은 들어 봤을지 싶다

워낙에 부정확한 정보가 난무하는 요지경 인터넷 속 세상인지라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절기(絶技)를
제대로 할 줄은 모르고 제대로 익혀본 바도 없이 
말만 다분한 인사들에게 대충이라도 뚜장의 요지를 전해주어

헛소리라도 덜 나오게 할까 싶어 뚜장에 관해 개인적인 소견을 피력하려한다
단지 이 글에서 뚜장을 어떻게 수련하고 단련하는가 하는 방법론은 언급 않키로 한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뚜장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뚜장이 뭔가를 느끼고 터득된 바 만을 말 해보려 한다

첫째로 뚜장은 우선 우리의 팔괘장을 풀어 나가는데에 있어서의 첫 단추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단추를 다 끼우고 난 후에 옷이 비뚤지 않고 맵시가 남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뚜장은 우리 팔괘장의 첫 단추이자 줄줄이 넘어지는 도미노이다

이 뚜장을 잘 익혀서 극복해 내면 그 이 후는 줄줄이 도미노이며
뚜장을 넘어서지 못하면 그 이 후도 역시 줄줄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뚜장이 제대로 익혀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운동재간과도 연관되어 지는데
여기서 운동재간이라는 것은 무술을 배우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감각이나 운동신경 또는
너무 둔탁하거나 뻣뻣해서 팔괘장을 선택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체질을 
기본 소양으로 갖추고 시작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래서 우리 팔괘장에서는 처음에 잘 끼워 넣어야 하는 뚜장이 첫 단추라는 소리며
뚜장에서 익혀진 타격감각이, 타격각도나 타격모양이 다른 모든 타격장술에 줄줄이 
도미노로 일맥상통하게 통용되어 진다는 것이다.


즉 뚜장이 통하면
좀 과장되게 말하여 촨장이나 삽장, 박장,쐐장등 다른 타격장술을 따로
단련치 않아도 절로 통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뚜장이 통하지 아니하면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다.

둘째로 뚜장을 터득하여 던지면 힘이 좋아진다.

뚜장은 초보에서는 정자세에서 단련하고
익숙해 짐에 따라 보(步)와 함께 익히게 되는데

뚜장을 바른 호흡과 어깨와 팔 그리고 전신의 탄력감을 터득하여 던지면 우선적으로 

힘이 뻗친다
(물론 외적인 근력운동도 필수이다)

원을 돌아도 전신에 충만감이 생기며 뻗치는 힘을 느끼지만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는 호흡과 달리
들숨에서 채워진 내부압력을 일시에 뇌성(雷聲)과 함께 발하는 장의 단련은
더욱 하복부를 진동키키고 순간적으로사지 전체의 기운을 한 점에 집중시켜 발출하고자 
함에 있다.

그것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전술한바와 같이 하복부의 호흡을 통한 내적인 힘과 
외적인 힘을 모아서 순간적으로 힘을 발출하고 또 모아서 힘을쓰고 또 모아서 
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즉 전신의 힘을 집중하여 순간에 발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란 소리다. 


셋째로 보(步) 와의 연계성이다.
뚜장(비단 뚜장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을 논함에 있어 호흡과 함께 빼먹고 말할 수 없는게 바로 步이다
정자세에서의 단련이 익숙해진 후에는 步와 함께 단련하는 것이 순서인데 
步가 익숙해진 연후에는 전술한 바데로 전신의 힘이 집중되어 힘이 발출되어 지는 순간에
步도 함께 움직여 주고 보의 동작이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즉 발이 먼저 떨어지고 권이나 장이 늦게 도달하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중국것이든 어디것이든 여러 동영상(형의 동영상도 마찬가지다)을 봐도 
손발이 일치되지 않는 그림이 태반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건 무효이며 다시 배워야 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반드시 손과발 그리고 호흡은 0.0001초의 따로 놀음이 없이
순간적으로 일치되어 힘(뚜장이든 붕권이든)을 쓰며 뇌성을 발하는 순간,
그리고 땅을 강하게 딛으며 정지되는 찰나지간에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뚜장을 제대로 던지기 위한 힘과 호흡과 步法의
위대한 합창이다


2010년 7월6일 

張毅林 書 

한국 팔괘장 보존회, 韓國 八卦掌 保存會

운동 문의

八卦掌 운동 호흡






상에는 호흡을 하는 부류가 여럿있다.

첫째가 절간의 스님들 둘째는 도교나 선도의 수행자들

셋째는 중국무술가
넷째는 요가종류의 수행자
다섯째는 혹세무민하는 사이비집단의 수행자들
...이 있다


호흡이라는 똑같은 방편을 통해
절간의 스님들에게 정각해탈, 성불열반이 목표라면

우화등선, 불로장생은 도교의 목표로서 즉 신선이 되는 것이다.

요가 역시 정신과 육체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니 도를 닦는 다는것은
결국 모두 같다


그러니까 깨달아서 부처님이 되는거나

우화등선해서 신선이 되는 것이나 정신과 육체의 생사를
초월코자 하는 것이나 그게 그거란 것이다.


반면에 중국 무술가에게 있어 호흡은 호흡이라는 방편을 통해

아랫배에 기운을 충실하게 채워 기력을 일치시켜 순간적인 
폭발력을 가중시키는데에 있다

이것을 쉽게 내공이란 말로 표현한다

팔괘장에서의 호흡은 천천히 아랫배에 의식을 두고 원을 돌면서 호흡을 하고 

태극권은 역시 천천히 하는 동작에 맞추어 호흡을 병행하고 
형의권에선 참장으로 호흡수련을 하는데

우리같은 무술가나 불교나 도교등의 호흡은 같은데
호흡이란 놈이 어떻게 해서 종교적으로는 깨달음의 수단이 되고

어떻게 해서 무술적인 힘을 얻게 되는가를 보자


호흡은 의외로 간단하여 들숨에서 아랫배를 내밀고 아랫배를
당기며 날숨에서 


어금니는 가볍게 물고 혀 끝은 입천장에 붙이고 의식을 아랫배에 둔다
하지만 들숨에서 아랫배를 내민다고 들이마신 공기가 아랫배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호흡기관은 폐로서 들숨이 아랫배까지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이 아랫배에는 오줌통이 있을뿐이고

단지 들숨이 아랫배까지 간다고 의식하며 아랫배를 내미는 것인데
마음의 눈으로서 그 일련의 과정을 집중하는 것이다

스님의 경우 호흡이 없이 참선을 한다고 참선이 안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호흡이 없이 화두를 들면 몸의 기운이 머리로 몰려

골이 아프고 소화 안되고 혈압오르고 얼굴 붉어지는 이른바 
상기병에 걸리는 것이다

해서 호흡을 통하여 아랫배로 의식을 집중하고 쳐오르는 기운을 
항상 아랫배로 내리는 것이다

이와같이 수행하면 우주의 기운이 아랫배로 모이고

기운이 아랫배로 모이면 생각과 감정이 맑아지고

호흡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되어아랫배가

내 마음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데


그러니까 들숨과 날숨사이에서

그 마음과 마음 이전의 자리를 찾아서 생사를 벗어나는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가는길이라고 보고
또 그런길이 우화등선하여 신선이 되는 길이라본다 

그러면 중국무술 즉 팔괘장에서는 호흡을 통하여 어떻게 기가 양성되는가

길이 있다면 딱 하나

호흡을 통해 하복근을 발달되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되고 집중이 가능해 진다
호흡과 집중으로 기를 모을 수 있는 이유는

의식이 가는 곳에 기가 따라가는 것이므로
생각을 단순화하고 호흡을 통하여 의식을 아랫배로 집중하면

아랫배로 기가 모여 축적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망상등 생각을 일으키면 기가 흩어지는 평범한 원리인데

그 축적된 기운을 외적인 힘과 합쳐 순간적인 폭발력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氣與力合이고 氣力一致 인 것이다

산중의 스님들도 호흡을 많이 하여 내적인 기운은 넘칠것이다
그러나 무술가와 달리 외적인 힘과 일치시키는 훈련이 안되있고

순간적으로 힘을 터뜨리는 습관이 안되어 있어 무술가와 같은 
건강은 하겠지만 길이 달라서 힘의 발출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호흡을 했다 하더라도 

한마디로 말하면 스님들은 총도 있고 실탄도 있는데 실탄을 발사할 
방아쇠가 없는 것이고

대포도 있고 대포알도 있는데 포탄을 발사할 방아끈이 없는것이다

호흡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호흡은 그냥 호흡일 뿐 간단하게 말한다면 전술한 것이 전부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호흡에 대해 어렇고 저렇고 말이 많은 것들은

호흡하다가 뇌의 구조가 약간 맛이 가버린 군상들과전술한
다섯번째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집단이라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무술가에게 있어 호흡은 내력을 키우기위한 수련과 수행의 방법일 뿐


道家와 禪家처럼 호흡을 통하여 도를 통하거나 
大悟하는 공부의 전문이 아니므로

그 방면은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알아서하게 
하는 맘이다 놔두는게 좋지않겠나 

아니면 아예 출가해서 그 방면으로 가던가...

호흡의 부작용은 영적인 장애로서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시중에 알려진 초능력 기법이나 기공기법은 한마디로 무당의 에너지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초 자연계는 어떠한 형태의 집중으로 에너지를 얻어 신통을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무술과는 전혀 다른 접신의 세계이다 부릴수는
있다고 보는데 


무술은 무술인 것이다

이것을 구별해야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며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내가무술 계통에서 호흡 좀 했다고 마치 무어라도 깨달은듯이
헛소리 늘어놓고 인생 달관한 듯이 도사폼 잡을려면

출가해서 제대로 도를 닦아라 이런 말이다. 
그 쪽이 도 닦는 전문이니까

2010년 7월 21 일
韓國八卦掌保存會- 張毅林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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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전 팔괘장 盧水田 八卦掌 계통도


노수전  팔괘장 盧水田 八卦掌 계통도

노 할아버지의 팔괘장에 있어 어려서 부터 사부의 문하에서 무술을 익히면서도
사실 상 노 할아버지 윗대의 계통을 명확히 알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이 노 할아버지의 선생은 이 경오라는 인물이라는 것
그런데 중국 팔괘장의 계통 중에 이경오라는 인물이 등장하지를 않는 것이 갑갑한 일이었다.
그럼으로해서 이견과 억측이 다반사였다.

또 한 인물은 왕두라는 인물이었는데 노 할아버지의 선생중에 이 경오(李 敬五)선생 말고
왕 두라는 선생도 노 할아버지의 선생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도데체 이 왕 두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우리 팔괘장의 팔괘보를 걷는 형태나 여러 정황들
그리고 윤파 팔괘장의 궁보전 선생이 고향인 산동으로 낙향하여 말년을 보냈다는
역사적 사실에 유추하여 우리의 팔괘적 스타일이 윤파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못한 점이 있었으나
무게중심이 윤복의 계통으로 기울었던 것이 수십년이다.
하지만 근래들어 북경에서 윤복선생이나 정정화선생에게 수학하고 고향인 산동으로
내려온 인물이 궁보전선생 이 외에도 더 있다는 사실이 파악되어

그 간 수십년 동안의 불 명확성에 종지부를 찍게되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노 할아버지는 생전에 문맹이었던 관계로 글로 적어주신것은 없고 오로지 귀로들은 발음상의
기억들인데...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정 정화선생의 제자 중 산동으로 내려온 인물이 이 문표(李 文彪)선생과 왕 종경(王 宗慶)선생이 있었는데
이 두분이 모두 노 할아버지의 선생이며 결국 노 할아버지는 두 분의 선생에게 팔괘를 학습한 것이 된다.

이 문표선생은 정파 팔괘장의 역사적 인물이며 이 문표선생의 호(號)가 경무(敬武)이다.
이 경오의 "오" 와 이 경무의 "무" 가 모두 중국발음으로 "우" 가 되는 연고로
중국발음의 "우" 를 "오" 로 파악한데에서 이 경무선생이 이 경오로 둔갑된 것이다.

그러니 중국 팔괘장계통에 이경오란 인물이 있을리 만무했고...
왕 종경선생은 뚜장을 특기로 삼아 별명이 왕두었다고 하는데
노수전 팔괘장이 뚜장의 비중이 비교적 큰 것은 왕 두선생으로 부터의 연조때문으로 파악된다.
특히 이 왕 두선생이 산동 탕랑의 유명인인 강 화룡선생과 합작으로 팔보 당랑권을 만든 왕종경이라 한다.

그리고 추측이긴 하지만 궁보전 선생으로부터의 영향도 일부분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며

그리고 한 10년정도 전부터 노수전 팔괘장의 기원에 대한 글이 인터넷상에 유포된 것이 있는데
그 글은 원래 본 홈페이지의 글로서 많은 관심있는 인사들이 퍼간것인데

그 글이 유포되게 된 것은 미국의 모 사이트에 영문으로 소개된 것을 당시의
본 보존회 회원 하나가 그런 글이 있다고 번역을해서 보존회 사이트에 올려놓은 것을 너도나도
퍼가는 바람에 인터넷상에 만연되게 된 것으로 그 내용은 자의적인 소설 쓰듯이 해놓아
별 가치가 없는 글임을 이 기회에 밝혀둔다.

따라서 우리 쪽 팔괘장의 계통은 아래와 같이 된다.
  




   일대종사          董海川
   이대                宋长荣, 程庭華   

   삼대                王斗 王钟庆, 李敬武

   사대                盧水田
   오대                金相昊
   육대                張貞根
   칠대                盧世俊

위와 같이 밝혀지게 되어 후학들에게도 마음의 짐 하나를 벗은 듯하여 기쁘고
강호에도 뚜렷이 밝힐 수 있어 또 역시 기쁜마음이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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