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1일 수요일

팔괘장 노수전 八卦掌 盧水田 (1)


노수전 팔괘장 (1)

국에 처음으로 팔괘장을 전해준 분은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노수전
할아버지이며, 諱字(휘장)는 盧俊淸(노준청)이고 흔히 아는 水田(수전)은 號(호)나 字(자)
이거나 집에서 편히 부르던 이름인 듯 하다.

나는 예전부터 말하던 습관이 노조사니 노선생이니 하지를 않고, 노할아버지라 지칭했다.
대를 따져봐도 나한텐 할아버지 뻘이니 경우에도 맞고 정감도 있고해서 예나 지금이나 입
버릇은 노할아버지 였다.

국민당원 이셨던 노할아버지는 중국의 공산화를 피해 한국으로 이주 하셨고, 나중에 정착하게
 된 곳이 인천이고 이곳 인천에서 팔괘장을 전해 주시게 된다. 화교무술 선생중엔 인천의 노할아버지 말고도 장권문의 필할아버지 그리고 서울에 任品章(임품장) 선생, 부산의 姜庚方(강경방) 선생이 있었으나

그 중 노할아버지가 한국인을 가장 우호적으로 생각하셨고, 그 탓에 한국인 제자가 여럿 나오는 계기가 된다.나의 선생님(김상호 선생님)은 중국인과 한국인 제자를 통털어 맨 끝에 배운 노할아버지의 마지막 제자다.

그리고 노할아버지 팔괘장의 전승 경로를 생각해 볼 때 윤복선생의 제자인 궁보전선생 계통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리적으로 먼 거리인 북경과 산동의 거리상 궁보전선생이 윤복선생의 후임으로 있던 황궁의 일을 사임하고, 고향인 산동으로 낙향하였기 때문에 북경의 팔괘장이 산동에도 전해지고, 노할아버지와 궁보전선생의 팔괘장이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 본다.

하지만, 여기에는 노할아버지의 기본적인 장의 형태가 현재 윤복파의 독특한 수형인 우설장과 다르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윤복파 팔괘장에서는 엄지를 구부리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붙인 우설장이라는 장형이고, 윤복파를 제외한 거의 모든 팔괘장류는 윤복선생과 나란히 양대제자로 꼽히는 정정화선생의 정파 형태이거나 정파형태와 거의 같은 형태의 장형의 모습을 보인다.

나 자신의 생각도 장의 모습은 상황에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는데, 시종일관 4지를 붙이고 엄지를 구부리고 수련하는 것은, 나름의 장점도 있을 것이므로 우설장을 폄하 하고자 함은 아니지만, 개인적 무술의 경험상 네 손가락을 붙이고 엄지를 구부리기 위해선 손목에 힘이 들어가 경직되게 되고, 손목이 경직되면 팔꿈치에 힘이 들어가며, 팔꿈치가 긴장되면 어깨가 마찬가지로 긴장 되므로 결국은 전신이 무거워져 팔괘장의 모토인 영활과 기민함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주장(주권)시 원의 중앙으로 향한 장으로 부터 전신에 이르는 내적인 기운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적당한 이완의 상태 보다는 긴장감으로 인해 기운의 소통에 문제가 있게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술가는 전통을 답습하려는 경향이 짙다.

설사 어느정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안에서도 전통은 지켜지고 또한 지켜져야 한다는 고집이 보태어져 무술적 가치가 별로 없는 부분과 별 볼일 없는 수들도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현재까지 계속 답습 되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소수의 전승자들 중 그러한 불문율 내지는 금기를 깨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바자기의 체질과 무술의 깊은 감각 그리고 경험적인 측면, 또 많은 사고와 성찰을 통해 무술 전체에서의 부분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후학에게 지도할 때에는 그러한 자기만의 성찰도 보태어 지도를 하게 된다.

또 그렇게 전달된 수련방식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또 다른 품격과 맛을 지닌 그 집안의 풍모를 지니게 된다. 이렇듯 작은 변화가 전승자가 끊이지 않고 풍성해 진다면 새로운 무술이 창시될수도 있고, 문파속의 작은 문파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겪는다.

궁보전선생의 장형이 어쨌는지 알바는 없으나 비록 윤복선생의 팔괘장을 논할때 빼 놓고는 말할 수 없는 큰 제자라 하더라도 윤복선생과 체질 및 체형이 다르면 똑같은 수를 수련 하더라도 무술적인 성취도와 신체적인 운동감각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장의 형태 구분도 그것이 무술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도 아니고, 촨장을 꼭 그렇게 네 손가락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문제 이므로 궁보전선생 자신의 무술 감각에 맞추어 변했을 수 도 있다.어쨌거나 현재 보이는 윤복파 팔괘장의 장의 형은 전술한 바와 같고, 그게 윤복파 팔괘장 최대의 특징이니 그렇게 안하면 윤복파 팔괘장으로서 뭔가 문제시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복파 궁보전류의 팔괘장으로 추정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수년 전 노할아버지의 아들인 노수덕선생이 생존해 계실 때 화교동네로 노수덕선생에게 인사차 찾아 뵌 적이 있다. 물론 여기서 노수덕선생의 무술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때에 노수덕선생이 사진 한장을 내 놓으면서 중국의 사제라 하며 보여 주었는데, 그 사진의 인물이 현재 중국에서 궁보전 팔괘장의 전승자인 황지성 선생이었다. 황지성 선생은 유투브에 궁보전 팔괘장으로 팔괘장술과 팔괘도술을 시연하는 동영상이 올라있다.

노할아버지의 팔괘장이 윤복파 팔괘장의 궁보전류로 생각 되어지는 부분 중 하나가 이 부분이기도 하지만, 예전 황지성선생의 팔괘장을 비데오 테잎으로 봤을때 장의 형태가 전술한 윤복파의 우설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윤복파는 우설장이 특징이며 대표적인 모습인데, 궁보전 선생은 윤복선생의 대제자이면서도 장형은 전술한 윤복파의 우설장을 전한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그것은 중국무술의 전통주의상 스승의 가르침을 답습하는 제자들이 태반 이겠지만, 무술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수련의 성취감각이 남 다른 전승자가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달리 가지게 된 느낌을 후대에게 학습시킨게 아닐까...

물론 추론이며 스승을 답습한 부류가 수련의 깊이에서 뒤처진다는 말도 아니다.노할아버지의 팔괘장이 궁보전류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것 중 또 하나가 사국정선생도 장점괴류의 왕자정의 제자이면서 궁보전 선생에게도 학습을 한것으로 알고있다.

옛날 노할아버지의 고향인 산동성 용성현 노가촌에서 사국정선생과 노할아버지가 검술을 함께 수련하는 모습을 어려서 보았다는 촌로가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국정선생의 장형도 윤복파의 우설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국정선생의 팔괘장 동영상에서 확인한 바 있으며, 또한 궁보전선생의 제자로 많이 알려진 유운초선생도 노수덕선생과 사질관계인 것으로 들은 바가 있는데, 역시 유운초선생도 우설장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윤복파의 흐름에 있어서도 우설장이라야만 윤복파가 된다고도 볼 수없고, 우설장이 아니어도 윤복파의 계통일 수 있다.지금 생각해 본 바와같이 노수덕선생과 궁보전 팔괘장의 황지성선생간의 사형사제 관계, 궁보전선생의 제자이며 장점괴선생의 형의팔괘장 전승자인 왕자정선생의 제자인 사국정선생과 노할아버지가 함께 수련하는 것을 보았다는 중국 촌로의 증언,

 또 궁보전선생의 제자인 유운초선생과 노수덕선생과의 숙질관계... 등등을 볼 때, 북경 윤파 팔괘장의 주보진 선생도 노할아버지의 사진과 동작의 풍격과 노할아버지의 고향등을 참작하여 볼때 궁보전계 거의 확실시된다고 말한적 있다. 이에 대해선 중국에 거주하는 주보진 선생의 한국인 제자를 통해서 확인된바 있다.

여러 정황상 노할아버지의 팔괘장은 윤복파 궁보전계통으로 추정이 결집 되어진다. 아마도 장의 모양은 궁보전 선생의 성취도나 느낌으로 바뀌었거나 노할아버지가 장점괴 형의팔괘장의 전승자이기도한 사국정선생과 함께 수련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노할아버지 자체의 변화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때 그시절 거기에 있어 보지를 않았는데, 어떻게 이거다 저거다 단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단지 모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무술의 우열은 어찌됐던 간에 북경에서 계속 눌러 살며, 운동을 한 사람들이 좌우지간 기득권과 언변이 성립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다.궁보전선생도 윤복선생의 큰 제자이면서도 북경을 떠나 말년에 산동으로 왔기 때문에 북경 본토에서 볼때 비주류가 된 것이며,

노할아버지도 아예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왔으니 중국에서 볼땐 완전 비주류로 되어버려 설령 한국에 어떻게 어떻게 하는 팔괘장이 있다 하더라도 현주류인 중국인들이 볼 때 그네들만이 발원지에서 여지껏 하고 있으니 전통이고, 어제 조합하고 오늘 갖다 붙여도 북경의 팔괘장이니까 전통이고...

스스로의 변화와 바뀜은 타당성을 부여하고 여타의 그것에 대해선 잘못되고 틀린것으로 간주하기 일변도로 보인다. 물론 노할아버지의 팔괘장만을 고집하는 나 자신도 북경 팔괘장의 전통과 여러 파벌의 특징... 모두 존중한다.

2007.11.9 毅林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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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많이 밝혀져 있고, 노수전 조사님의 선생님께서 정파였다는 사실을 들었다

역사적으로 동해천 선사님의 팔괘장은 여러 선생님들에 전해졌고, 각기 그 선생님들의 개개인
의 특징을 담아 전수되어져 왔다. 이 말은 지금도 그 근본은 유지 한채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
발전 되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전 중국에서 배워온 이모씨가 노수전 할아버지의 이름을 팔아 스스로 빛나 보이려고 
애를 쓰시다가 한번 보자는 말에 입 다무시고 도망친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 있었다.

그사람또한 팔괘장의 정통성, 근본에 대해 말을 하신거로 기억된다.

근본은 잊은체 역사적이다, 우린 전통을 담고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그럼 근본이란 무엇인가? 팔괘장의 느낌에 맞게 팔괘장을 잘 하는 것이다.
팔괘장을 잘한다는 것은 무었인가?

아직 나도 가보지 못한 세계이므로 더 말을 할수가 없다. 그냥 이러하리다 생각만된다.

몸에 힘이 넘치고 관절은 탄력이 넘치고 내기는 탄탄하다는 것이다.

韓國 八卦掌 保存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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